문장 재사용(text recycling)의 정의 및 허용 기준

조혜민 | (주) 인포루미, 과편협 원고편집위원장

서 론

출판윤리에서 중복게재나 표절 등과 함께 논의되는 문제가 저자 자신이 과거에 쓴 문장을 다시 사용하는 문장 재사용(text recycling)이다. 예전에는 연구자 본인이 쓴 문장이라도 적절한 인용 표시를 하지 않았다면 이를 비윤리적인 연구행위인 ‘자기 표절(self-plagiarism)’이라고 간주하였다. 하지만 이전 연구의 문장을 다시 쓰는 것을 무조건 잘못된 행위로 보기 어렵고 동일 연구자의 계속된 연구나 글쓰기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일일 수 있어, 자기 표절보다는 ‘문장 재사용(text recycling)’이란 용어 사용이 적절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최근 학회나 출판사 등에서 표절 검사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경우가 늘면서 문장 재사용 사례가 많이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문장 재사용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어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어디까지 재사용이 허용되는지에 대한 공감대나 기준이 형성되지 않았다. 과편협[1]에서 2014년에 출판한 “이공계 연구윤리 및 출판윤리 매뉴얼”은 문장 재사용을 “자신이 발표했던 저작물에 이미 기술된 바 있는 적은 범위의 내용을 새로운 논문 또는 서적에 재사용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적은 범위”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모호함을 남겼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 출판윤리 기관인 COPE (Committee on Publication Ethics)[2]에서는 문장 재사용 가이드라인(Text Recycling Guidelines)을 발표하였고, 미국에서도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문장 재사용에 관한 연구(Text Recycling Research Project: A multi-institution, NSF-funded initiative investigating text recycling in STEM research, TRRP)[3]를 미국국립과학재단의 기금을 받아 진행하였다.

본고에서는 이 두 기관에서 발표한 문장 재사용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고, 이를 우리나라 학술지에 적용할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COPE의 Text Recycling Guidelines

COPE 가이드라인은 편집인들이 문장 재사용의 허용 범위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구체화하여 제시하였다[2]. 이는 문장 재사용의 허용 여부가 재사용한 문장의 (1) 분량, (2) 위치, (3) 출처 기재 여부, (4) 학술연구의 성격을 띤 글인지(research/non-research article) 여부, (5) 저작권 침해 여부, (6) 시대와 장소의 문화적 규범 등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문장 재사용을 허용할지 결정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기준은 재사용된 텍스트의 분량이다. 몇 문장을 재사용한 경우와 여러 단락을 그대로 재사용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같은 양의 문장을 재사용했다고 하더라도, 논문의 방법 부분(methods section)에서 문장을 재사용한 경우는 고찰 부분(discussion section)에서 재사용한 것보다 허용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분량만으로 허용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중복된 내용이 새로운 연구의 독창성에 미치는 영향을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 또한 문장을 합법적으로 재사용했는지 여부, 기존의 아이디어나 데이터를 새로운 것처럼 표현했는지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COPE 가이드라인에서 원저의 논문 구성을 기준으로 문장 재사용 허용 기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표 1).

Text Recycling Research Project

TRRP에서는 문장 재사용을 “새 논문에서 기존의 텍스트 자료(문장, 시각 자료, 또는 수식)를 재사용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3]. 보다 구체적으로는 (1) 새 논문의 내용이 기존 자료와 동일한 경우(또는 형식과 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함), (2) 재사용한 내용이 새 논문에서(따옴표 또는 블록 들여쓰기를 통해) 인용으로 표시되지 않은 경우, (3) 새 논문의 저자 중 최소 한 명이 이전 논문의 저자인 경우 등이 문장 재사용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문장 재사용의 유형을 4가지로 구분했고 그 구분 방법을 그림 1과 같이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 유형은 발전적 재사용(developmental recycling)으로, 출판되지 않은 자료(학술대회 발표자료, 연구제안서 등)를 재활용하는 것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두 번째는 생성적 재사용(generative recycling)인데, 새 논문을 작성하면서 기존 연구의 일부분을 재사용하여 기존 연구와는 다른 학문적인 기여를 하는 경우이다. 윤리적/법적인 문제는 재사용한 내용과 분량에 따라 달라진다. 세 번째 유형은 변형 출판(adaptive publication)으로 원 논문의 중요한 내용을 다른 독자층, 다른 언어, 다른 장르 등으로 변경하여 재사용한 경우이다. 이 경우는 저작권자로부터 재사용 허락을 받아야 하며 편집인과 독자들에게 그 사실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복게재(duplicate publication)는 이전에 발표한 논문을 그대로 재출판한 경우이다. 대부분 허용되지 않는다. 이 내용을 표로 정리하면 표 2와 같다.

<표 1> COPE 가이드라인에서 문장 재사용 허용 기준

논문 구성 허용 가능 여부 구분
서론 및 배경 일부분 허용
연구방법 일반적으로 허용 가능. 허용 범위는 편집인의 재량과 해당 분야의 지식을 바탕으로 평가
결과 거의 허용되지 않음. 일부 정당한 재사용이 있을 수 있으나 사전에 명확하게 보고해야 함 X
고찰 일부분 허용 가능 하나, 새로운 논문의 결과에 초점을 맞춰 작성해야 함
결론 거의 허용 안됨 X


<그림 1> 문장 재사용의 4가지 구분 방법

<표 2> 문장 재사용의 유형 및 허용 여부

유형 사례 윤리적 법적
발전적 재사용 • 학회 구두/포스터 발표를 논문으로 재사용
• 연구제안서의 내용을 학회 포스터에서 재사용
일반적으로 가능 일반적으로 가능
생성적 재사용 • 새로운 논문에서 출판된 예전 논문의 실험방법에 대한 설명을 재사용
• 새로운 논문에서 출판된 예전 논문의 요약을 재사용
• 분량이나 종류에 따라 판단
• 번역은 가능
연구방법이나 배경에 부분적으로 재사용한 경우 가능
변형 출판 • 출판된 논문의 내용을 오피니언 칼럼, 블로그, 또는 잡지 기사로 재사용
• 출판된 논문을 다른 언어로 번역출판
저자들이 편집인과 저자들에게 명확하게 밝혔을 때 가능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았을 때 가능
중복 출판 • 게재된 논문을 다른 저널에 투고
• 게재된 논문을 표면적으로 변경하여 다른 저널에 새로운 논문으로 투고
불가 불가

고려할 문제

저자의 문장 재사용에서 제기될 수 있는 한 가지 문제는 저자의 권한에 관한 것이다. 앞서 TRRP는 문장 재사용을 정의할 때 새로운 논문의 저자 중 한 명은 최소한 이전 논문의 저자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 논문에서 저자가 한 명인 경우는 거의 없으며, 저자의 수가 수십 명에 이르는 경우도 종종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수십 명의 저자 중 단 한 명이 기존 연구의 문장을 재사용할 권한이 있는지에 대해 고려해 보아야 한다. 아직까지 공동 저작물에 대한 개별 저자의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연구진들 간에 합의된 바는 없다. 때문에 TRRP에서는 문장 재사용을 할 경우 기존 논문의 모든 저자들에게 알리고 허락을 받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변형 출판과 같이 기존 연구의 핵심적인 내용을 재사용하는 경우가 아닌, 한두 문장을 재사용하는 경우까지 별도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저자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장 재사용과 관련하여 고려해야 할 또 다른 문제로는 투명성이 있다. 예를 들어 출판하지 않았던 자료의 문장을 재사용하는 경우, 이를 명확히 밝히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출판이 되지 않았으므로 인용할 수 없고, 논문의 어떤 부분에 해당 내용을 적어야 할지 저자들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 론

이상의 내용을 통해 볼 때, 문장 재사용을 자기 표절이며 비윤리적이라고 여기던 것으로부터 과학적 글쓰기의 자연스러운 과정일 수 있다고 인식이 전환된 부분은 있다. 하지만 문장 재사용 시에도 인용 표시를 해야 하고, 분량이나 내용에 따라 그 허용 여부가 다르며, 재사용 사실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고,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등의 문제는 기존과 변함이 없다.

편집인들은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고민하여 저자들이 쉽게 논문을 작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각 학술지에는 (1) 투고규정 상에 문장 재사용의 정의와 해당 학술지에서 허용하는 문장 재사용의 범위를 분명하게 밝히며, (2) 미출판 자료 혹은 기존 저자들로부터 재사용 허락을 받을 수 있는 양식을 만들어 저자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3) 학술대회 기간이나 학회 소식지 등에 출판윤리에 대한 안내를 하는 등의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참고문헌

1. 한국과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 이공계 연구윤리 및 출판윤리 매뉴얼. 서울: 한국과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 2014.

2. Committee on Publication Ethics (COPE). Text recycling guidelines [Internet]. Hampshire, UK: COPE; 2022 [cited 2022 June 20]. https://publicationethics.org/files/Web_A29298_COPE_Text_Recycling.pdf.

3. Text Recycling Research Project [Internet]. Durham, NC: Duke University [cited 2022 June 20]. https://textrecycl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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