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학술지의 바람직한 모습은 무엇인가

김기홍 | 과편협 출판위원장, Science Editing 편집장, 아주대

미국물리학회(American Physical Society)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인 Physics Today에는 종종 학술지 출판에 관한 논설이나 독자 투고가 실린다. 이 글에서는 2020년 2월호 Physics Today에 실린 “High journal acceptance rates are good for science”라는 제목의 독자 투고를 소개하고자 한다[1]. 이 글은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천문학과의 Jason Wright 교수가 쓴 글로서 학회 발간 학술지의 이상적인 모습에 관한 의견을 담고 있다. Impact factor (IF)와 같은 정량 지표가 학술지의 평판이나 중요성에 대한 평가를 좌우하는 요즘, 학술지 편집인들은 종종 IF를 높이기 위해서는 논문 게재율(journal acceptance rate)을 인위적으로 낮춰야 한다는 충고를 듣곤 한다. Wright 교수는 이 의견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는 미국천문학회(American Astronomical Society)에서 발행하는 Astrophysical JournalAstronomical Journal에 주로 논문을 투고하는데, 이 학술지들은 85% 이상의 높은 논문 게재율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의 발전에 긍정적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으며 이런 모습이 바람직한 과학 학술지의 형태라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은 미국물리학회에서 발행하는 기본 학술지들인 Physical Review 학술지들에도 유사하게 적용된다고 말하고 있다.

물리학, 천문학 분야의 학회 학술지들이 높은 게재율을 갖는 이유는 이 학술지들의 편집 방침이 높은 IF를 성취하는 데 있지 않고 광범위한 연구 분야의 충실한 연구 결과들을 출판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는 명백하게 틀린 결과를 담고 있거나 이미 잘 알려진 결과를 되풀이하는 논문이 아닌 경우 대다수의 투고 논문이 출판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재율이 매우 낮은 과학 학술지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 중에는 예측했던 실험 결과를 얻지 못한 논문, 즉 null result를 소개하는 논문이나 편집인에게 별로 재미없는 결과라고 인식되는 논문들이 거의 출판되지 못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반면 얼핏 보기에는 매우 중요하고 새로운 결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별로 중요성이 없거나 아예 틀린 결과를 발표하는 논문들이 게재율이 매우 낮은 유명 학술지들에 더 자주 실리는 경향이 있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이런 주장과 관련하여 저자는 1955년 Physical Review에 출판된 물리학자 Raymond Davis Jr의 논문에 대한 한 심사위원의 부정적인 심사평을 인용하여 소개하고 있다[2]. 이 논문은 태양에서의 중성미자 생성률 상한선에 대한 실험 결과에 관한 것으로 기본적으로 null result를 보고하는 논문이다. 이는 2002년 Davis Jr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을 이끈 연구의 시작이 된 중요한 논문이지만, 투고 당시 이 심사자는 무의미한 결과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문은 결국 높은 게재율을 갖는 Physical Review에 출판되어 관련 분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흔히 게재율이 매우 낮은 최고 수준 학술지들에서는 논문의 질에 대한 엄격한 심사를 통해 높은 질의 논문들만이 출판된다고 간주된다. 그러나 저자는 논문 심사에는 단순히 논문의 질 뿐 아니라 주관적 취향, 학계 정치, 직업적 이익, 학문의 보수성 등 학문 외적인 요소들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IF가 높은 Nature, Science 등의 학술지에 논문을 출판하는 것이 교수 채용이나 연구비 수주 등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하는 현상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 학술지들에 투고되는 대다수의 논문들은 전문적인 연구를 수행하지 않는 직업적인 편집인들에 의해 사전심사 탈락(desk rejection)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이 직업 편집인들이 해당 학문의 실상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으며 학문의 진정한 발전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는가 묻고 있다.

저자는 특정 분야 주요 학술지들의 게재율이 너무 낮다는 것은 그 분야의 연구자들이 너무 많은 시간을 논문 심사와 논문의 수정 및 재투고에 쓰고 있음을 의미하며, 특히 신진 연구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연구자들은 이미 이루어진 연구 결과를 출판하는 데보다 새로운 연구를 수행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출판이 대세인 현 시대에 연구자들은 특정 학술지에 실린 논문들 전체를 읽기보다는 자신들에게 필요한 논문을 검색하여 찾아 읽고 있으므로, 학술지들이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사용하여 적은 수의 논문을 출판하려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한편 학술지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는 특정 시대에 해당 학문 연구에 종사한 연구자들의 연구 활동을 기록하는 기록물로서의 의미도 있기 때문에, 높은 게재율을 통해 많은 논문을 싣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학회들은 기본 학술지 외에 특별히 주목할만한 결과들을 출판하는 우수 학술지를 별개로 운영할 수 있는데, 미국물리학회의 경우 게재율이 약 40%에 달하는 Physical Review Letters가 우수 학술지에 해당한다. 이 학술지는 이보다 훨씬 낮은 게재율과 높은 IF를 갖는 NatureScience보다 노벨물리학상으로 이끈 논문들의 수가 훨씬 더 많으며, 대다수의 물리학자들이 인정하는 최고 학술지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본인은 지금까지 소개한 Wright 교수의 의견에 많은 부분 동의한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학술지나 연구자의 평가는 모두 IF를 비롯한 인용횟수 기반의 정량 지표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논문 저자들이 다른 논문들을 인용하는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런 방식이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일부 유명 학술지들의 경우 IF를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크게 끌 수 있는, ‘화려해 보이는(flashy)’ 논문들을 집중적으로 출판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학술지들이 학문을 왜곡하고 학문 발전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대학에서 교수 채용을 할 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웃지 못할 현실은 Nature, Science 등에 논문을 출판한 연구자들을 우선적으로 채용하려다 보니 물리학과, 화학과, 재료공학과, 전자공학과, 기계공학과, 화학공학과 등 많은 학과들의 공개 채용에 합격한 지원자들의 연구 분야가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본 저자는 Wright 교수의 글을 여러 연구자, 편집인들에 소개하여 의견을 들어보았는데 그 중 한림대 허선 교수의 의견을 아래에 인용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이런 학술지가 원래 학술지의 원형(prototype)입니다. 과거 기생충학 학술지 예를 보면 연 40편 발행하는데 저자는 대부분 국내 기생충학자이고 일부 해외에서 우리나라 학자와 같은 주제를 연구하는 학자가 투고하는 정도여서 모든 원고가 일정 수준을 갖추어 심사 후 조금만 수정하면 출판할 수 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투고 논문의 90%가 게재되었습니다. 즉 특정 학문 분야, 특정 지역의 전문 학술지로서 충분히 생존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새 SCIE 학술지가 아니라고 국내에서 투고가 대폭 감소하고 갑자기 해외에서 투고가 늘다 보니 질 관리를 위하여 게재율이 빠르게 낮아졌습니다. 그 후 SCIE 학술지가 되고 나니 게재율은 25%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물리, 천문 분야는 연구자가 한정되어 있고 일정 수준의 역량이 되어야 논문 작성이 가능하지만 의학 분야는 연구의 진입 장벽이 낮아서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원고를 작성하여 투고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결국 해당 학문 분야의 전문성, 연구자 역량 수준 등에 따라 다른데 물리, 천문 분야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고 국제적으로 연구자 역량이 일정 수준 이상이라서 높은 게재율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런 학술지가 원래 우리가 아는 학술지의 원형입니다. 그나마 기생충학은 전문가가 다루는 분야라서 낫지만 제가 편집인으로 일하는 보건의료교육평가 분야는 전세계의 이 분야 교원은 누구나 다룰 수 있어 논문 수준이 천차만별입니다. SCIE 학술지도 아닌데 현재 게재율이 25% 수준이고, 투고 수는 계속 증가해 게재율이 점점 더 내려가고 있습니다. 가장 좋기로는 특정 분야에서 일정 수준의 연구 역량을 갖춘 100개 연구실이 연 1편씩 논문을 투고하여 100편을 내면서 질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게재율 100%, 연 1편 출판으로 모두 생존 가능하다고 가정합니다. 그리고 해당 연구실의 후속 세대를 잘 훈련하여 일정 수준 이상 연구를 지속함으로써 해당 분야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학술지는 최고 수준의 원고를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의 원고를 받는 것이 중요하고, 어느 논문이 스타 논문이 될지는 출판할 때 아무도 모릅니다. 뜻밖의 원고가 기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온라인 출판, 오픈 액세스 등 학술지 출판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현 시대에 바람직한 과학 학술지의 모습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소개한 의견 외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점은, 학술지는 학문의 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학문이 학술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의 학술지 출판 환경에는 불만족스러운 면들이 분명히 존재하므로 이를 개선하기 위한 많은 토론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1] Wright J. High journal acceptance rates are good for science. Phys Today 2020;73:10–1. https://doi.org/10.1063/PT.3.4400
[2] Davis Jr R. Attempt to detect the antineutrinos from a nuclear reactor by the Cl37(ν ̅,e-)A37 reaction. Phys Rev 1955;97:766–9. https://doi.org/10.1103/PhysRev.97.766
[3] Davis Jr R. Nobel lecture: a half-century with solar neutrinos. Rev Mod Phys 2003;75:985–94. https://doi.org/10.1103/RevModPhys.75.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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